목회서신

사사기 21:1-25. 실천적 무신론자들 Practical Atheists.

사이트관리자 0 223 09.20 23:31

오늘의 말씀 묵상 2021. 09. 20. 월요일

사사기 21:1-25. 실천적 무신론자들 Practical Atheists.

 

이스라엘의 말과 행동은 매우 경건해 보입니다. 모두 하나님 중심으로 보입니다. 백성이 벧엘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이스라엘 중의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습니다.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베냐민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을 지킵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진멸하기로 한 맹세를 지켜 야베스 길르앗을 진멸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열두 지파를 세우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으로 아내를 구해줍니다. 얼마나 신앙적입니까? 그러나 실상은 모두가 거짓이고 불법이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행동입니다. 그 어디에도 회개와 용서는 없습니다.

 

베냐민 지파를 진멸한 것은 백성들 스스로 한 짓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회개도 없는데, 번제와 화목제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사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물은 흔적도 없습니다. 가나안족속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지, 베냐민 지파에 딸을 주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르앗 사람은 의인이지, 진멸 당할 죄인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맹세를 지킨다고 의인을 진멸합니다. 진멸하겠다는 맹세를 지킨다고 하면서, 처녀 400명을 생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절기에 춤추는 여인들을 납치합니다. 납치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신명기 24:7절을 범한 죄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풍성한데,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런 사람이 실천적인 무신론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재산을 몽땅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고르반) 부모님을 섬길 것이 없다고 하던 실천적 무신론 사건이 떠오릅니다. 어설픈 과학으로 성경 진리를 무시합니다. 인권과 평등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찬양하고 조장하며, 차별금지라는 이름으로 역차별합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낙태할 자유를 보장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드려 최첨단 무기를 만들어 무장합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조용기 목사님 장례식장에서 불신자 대통령 후보를 위해서 축복하며 안수기도를 합니다. 모두 실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다 갖추었는데,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맘대로 행하는 모습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는 지금 신 사사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실천적 무실론자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주님, 두렵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인데(2:26), 오늘 제 모습이 아닌지요. 경건의 모양을 두루 갖추었으나 하나님 없는 예배, 하나님을 잊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요.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주문 같은 기도를 드리지 않는지요. 하나님을 섬긴다는 착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능욕하지는 않는지요. 사사 시대와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2:18)고 하신 야고보 사도를 기억합니다. 주님, 은혜를 베푸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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